2005년 08월 29일
아버지의 눈물
아버지가 또 술에 취해 들어오셨다.
전에도 이런 적이 없었던 건 아니었지만
아니 술에 취하지 않으면 살아가지 못할 것처럼 괴로워하던 아버지였지만
오늘의 술주정은 또 다른 아픔을 내게 안겨준다.
가전제품 대리점을 하며 풍족하지는 않지만 배 주리며 살지는 않던 우리 가족은
IMF 즈음하여 아버지의 사업 판단 착오로 많은 빚을 지게 되었다.
술과 사람을 좋아하고 어려울 것 없이 살아온 아버지에게는
그 시련이 너무나도 크게 다가왔던 것 같다.
그 사이 모시고 살던 할아버지, 할머니 모두 좋지 않은 모습으로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그마저도 큰 죄책감으로 등에 업었다.
원래 주사가 있긴 했지만, 그 이후 아버지는 가는 곳마다 말썽을 일으켰다.
고성방가며 기물파손, 폭력 등 술을 마시면 어디서 그런 힘과 용기가 생기는지
난 그런 아버지가 안쓰럽기보다는 밉고 원망스럽기만 했다.
제정신으로 돌아온 아버지는 항상 나에게 미안해 하셨다.
어머니한테, 주위 사람들에게도 굽히지 않았지만
나에게만은 항상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아버지는 몰락 이후에도 재활하려는 의지를 몇 번이고 불태웠었다.
하지만, 많은 시간을 말재간 하나로 장사를 하며 보낸 탓인지
아니면 빚으로 주위 사람들에게 준 피해를 어떻게든 갚아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인지
아버지의 사업은 한탕주의에 젖어 있었다.
다단계 사업에 빠져들어 몇 년간 몸을 축내고
유행 지난 부동산에 뛰어들어 이리저리로 돌아다니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곳에서도 술이라는 유혹을 물리치지 못하고 끝내 사고를 일으키고는
집으로 돌아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누워 자고 있는 아버지를 볼 때면
뭐라 말할 수 없이 속상하고 북받쳐 오르는 감정 억제할 수가 없었다.
그 사이 나도 집안의 가장으로서 많은 짐을 나눠 가지려 노력했다.
대학에 다니면서 내가 벌어 등록금 매우고 벌어 먹고살았다.
이 년 가까이 일정한 잠자리도 없이 다니던 회사건 동아리방이건 랩실이건
이불 하나만 있으면 가리지 않고 내 한몸 의탁했다.
젊음의 치기도 있었을 것이고 이렇게라도 해야
나만 잘 먹고 잘산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렇게 내 나름대로 삶을 가꿔오는 동안
아버지는 가는 곳마다 실패를 맛보았다.
지금 생각하면 나는 참 나쁜 아들이다.
그저 보기 싫으면 안 봤고, 하기 싫으면 안 했다.
아버지께서 공인중개사 시험 한 번만 쳐달라고 말할 때도
난 내 갈 길 바쁘다고 거절했었다.
다음해 엄청나게 어려워진 공인중개사 시험.
그때도 난 그저 씁쓸했었다.
상근 생활을 시작하며 난 집으로 돌아왔다.
밤마다 분식집으로 야간 일을 나가시는 어머니.
고3 수험생인데도 과외 한 번 하지 못하는 동생.
날마다 정신적으로 괴로움을 이기지 못하는 아버지.
제정신의 아버지를 보고 있자면
참 열심히 살려고 발버둥친다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실제 아버지는 나와 어머니가 어렵게 버는 돈을 축내는
돈 쓰는 기계처럼 보일 때도 여러 번이었다.
집안의 제사나 큰일이 있을 때면 홀연히 떠나 집을 비우고
잠잠해진 다음에나 술에 취해 집으로 돌아와 누워 있다.
나와 어머니는 어려운 상황을 간신히 해결하고는
그런 아버지를 원망할 때가 참 많았다.
그렇게 아버지를 존경하던 한 아이는
아버지처럼 살지는 않겠다고 다짐하는 어른이 되었다.
집을 이사하면서 아버지는 한동안 좋은 모습을 보였다.
아침이면 동생의 도시락을 싸고 집안일을 하며
자상하고 다정한 그동안 못했던 아버지로서의 모습을 거뜬히 해냈다.
그런 아버지를 보며 나와 동생은 너무 기뻤다.
어머니도 겉으로는 투박하지만 기뻐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리고 오늘은 드디어 아버지가 동네 부동산가게로 첫 출근하는 날이었다.
며칠 전부터 면접을 본다, 구두를 산다, 말이 많더니 오늘이 첫 출근하는 날이었다.
이제 집안일은 누가 하나 도시락은 누가 싸나 걱정하던 나와 동생은
그래도 아버지께서 밝은 모습을 유지할 수 있다는 생각에 그저 기뻤다.
하지만.
지금 아버지는 옆 방에서 울고 계신다.
첫 출근한 그곳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난 알지 못한다.
소리를 지르며 들어서는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으면서도
난 문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놀란 동생과 어머니만 그저 아버지를 달랠 뿐이다.
난 지금 무척 떨리고 두렵다.
내가 방문을 열고 나가 무슨 말을 꺼내야 하는 걸까.
차라리 지금 이대로 잠들어 버리면 안 될까.
내일이면 꿈처럼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아버지는 또 어떤 모습에 꺾이고 주저앉아 버린 걸까.
이제 아버지는 물건을 던질 힘도, 큰 소리를 낼 힘도 없는가보다.
끝내 미안하다, 미안하다 라는 힘없는 몇 마디를 끝으로 잠들어버렸다.
복잡하던 내 마음은 그 몇 마디 말과 함께 조금씩 정리되었다.
내일이면 난 출근 준비를 하며 아무 일 없었고 아무것도 모르는 듯 행동할 것이다.
그리고 퇴근길에 삼겹살에 소주 한 병 사서 집에 들어설 거다.
소주 한 잔에 난 그동안 하지 못한 말을 읇조릴 거다.
'아버지... 힘내세요...'
전에도 이런 적이 없었던 건 아니었지만
아니 술에 취하지 않으면 살아가지 못할 것처럼 괴로워하던 아버지였지만
오늘의 술주정은 또 다른 아픔을 내게 안겨준다.
가전제품 대리점을 하며 풍족하지는 않지만 배 주리며 살지는 않던 우리 가족은
IMF 즈음하여 아버지의 사업 판단 착오로 많은 빚을 지게 되었다.
술과 사람을 좋아하고 어려울 것 없이 살아온 아버지에게는
그 시련이 너무나도 크게 다가왔던 것 같다.
그 사이 모시고 살던 할아버지, 할머니 모두 좋지 않은 모습으로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그마저도 큰 죄책감으로 등에 업었다.
원래 주사가 있긴 했지만, 그 이후 아버지는 가는 곳마다 말썽을 일으켰다.
고성방가며 기물파손, 폭력 등 술을 마시면 어디서 그런 힘과 용기가 생기는지
난 그런 아버지가 안쓰럽기보다는 밉고 원망스럽기만 했다.
제정신으로 돌아온 아버지는 항상 나에게 미안해 하셨다.
어머니한테, 주위 사람들에게도 굽히지 않았지만
나에게만은 항상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아버지는 몰락 이후에도 재활하려는 의지를 몇 번이고 불태웠었다.
하지만, 많은 시간을 말재간 하나로 장사를 하며 보낸 탓인지
아니면 빚으로 주위 사람들에게 준 피해를 어떻게든 갚아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인지
아버지의 사업은 한탕주의에 젖어 있었다.
다단계 사업에 빠져들어 몇 년간 몸을 축내고
유행 지난 부동산에 뛰어들어 이리저리로 돌아다니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곳에서도 술이라는 유혹을 물리치지 못하고 끝내 사고를 일으키고는
집으로 돌아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누워 자고 있는 아버지를 볼 때면
뭐라 말할 수 없이 속상하고 북받쳐 오르는 감정 억제할 수가 없었다.
그 사이 나도 집안의 가장으로서 많은 짐을 나눠 가지려 노력했다.
대학에 다니면서 내가 벌어 등록금 매우고 벌어 먹고살았다.
이 년 가까이 일정한 잠자리도 없이 다니던 회사건 동아리방이건 랩실이건
이불 하나만 있으면 가리지 않고 내 한몸 의탁했다.
젊음의 치기도 있었을 것이고 이렇게라도 해야
나만 잘 먹고 잘산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렇게 내 나름대로 삶을 가꿔오는 동안
아버지는 가는 곳마다 실패를 맛보았다.
지금 생각하면 나는 참 나쁜 아들이다.
그저 보기 싫으면 안 봤고, 하기 싫으면 안 했다.
아버지께서 공인중개사 시험 한 번만 쳐달라고 말할 때도
난 내 갈 길 바쁘다고 거절했었다.
다음해 엄청나게 어려워진 공인중개사 시험.
그때도 난 그저 씁쓸했었다.
상근 생활을 시작하며 난 집으로 돌아왔다.
밤마다 분식집으로 야간 일을 나가시는 어머니.
고3 수험생인데도 과외 한 번 하지 못하는 동생.
날마다 정신적으로 괴로움을 이기지 못하는 아버지.
제정신의 아버지를 보고 있자면
참 열심히 살려고 발버둥친다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실제 아버지는 나와 어머니가 어렵게 버는 돈을 축내는
돈 쓰는 기계처럼 보일 때도 여러 번이었다.
집안의 제사나 큰일이 있을 때면 홀연히 떠나 집을 비우고
잠잠해진 다음에나 술에 취해 집으로 돌아와 누워 있다.
나와 어머니는 어려운 상황을 간신히 해결하고는
그런 아버지를 원망할 때가 참 많았다.
그렇게 아버지를 존경하던 한 아이는
아버지처럼 살지는 않겠다고 다짐하는 어른이 되었다.
집을 이사하면서 아버지는 한동안 좋은 모습을 보였다.
아침이면 동생의 도시락을 싸고 집안일을 하며
자상하고 다정한 그동안 못했던 아버지로서의 모습을 거뜬히 해냈다.
그런 아버지를 보며 나와 동생은 너무 기뻤다.
어머니도 겉으로는 투박하지만 기뻐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리고 오늘은 드디어 아버지가 동네 부동산가게로 첫 출근하는 날이었다.
며칠 전부터 면접을 본다, 구두를 산다, 말이 많더니 오늘이 첫 출근하는 날이었다.
이제 집안일은 누가 하나 도시락은 누가 싸나 걱정하던 나와 동생은
그래도 아버지께서 밝은 모습을 유지할 수 있다는 생각에 그저 기뻤다.
하지만.
지금 아버지는 옆 방에서 울고 계신다.
첫 출근한 그곳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난 알지 못한다.
소리를 지르며 들어서는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으면서도
난 문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놀란 동생과 어머니만 그저 아버지를 달랠 뿐이다.
난 지금 무척 떨리고 두렵다.
내가 방문을 열고 나가 무슨 말을 꺼내야 하는 걸까.
차라리 지금 이대로 잠들어 버리면 안 될까.
내일이면 꿈처럼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아버지는 또 어떤 모습에 꺾이고 주저앉아 버린 걸까.
이제 아버지는 물건을 던질 힘도, 큰 소리를 낼 힘도 없는가보다.
끝내 미안하다, 미안하다 라는 힘없는 몇 마디를 끝으로 잠들어버렸다.
복잡하던 내 마음은 그 몇 마디 말과 함께 조금씩 정리되었다.
내일이면 난 출근 준비를 하며 아무 일 없었고 아무것도 모르는 듯 행동할 것이다.
그리고 퇴근길에 삼겹살에 소주 한 병 사서 집에 들어설 거다.
소주 한 잔에 난 그동안 하지 못한 말을 읇조릴 거다.
'아버지... 힘내세요...'
# by | 2005/08/29 21:14 | Life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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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어렸을때 아버지께서 회사에서 스트레스 받아오면 술주정하시면서 집에들어 오셔서 저를 포함해서 자녀(전 셋째 아들임)들을 불러모아서 노래도 시키고 벌주기도 하고 하였답니다. 물론 물건을 부수거나 물건을 밖게 내동댕이 치기도 잘 하셨죠. 이 시기가 한 10여년은 되는 듯 합니다. 이 고비를 잘 넘기시고 나니 그 다음에는 조용해 지시고 회사생활 열심히 하시더라구요. 하지만 저는 아버지의 존재 자체가 커다란 기쁨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를 믿는 마음을 저버리지 않았지요. xissy님께서도 아버님을 믿는 마음을 끝까지 버리지 마셧으면 합니다. 아마 xissy님께서는 마음이 결연하셔서 가정을 잘 보살피리라 생각합니다. 아무쪼록 힘내시구요. 힘드시면 성현들의 고전(노자, 공자, 석가, 예수, 소크라테스 등등)을 구해서 읽어보세요. 아마 마음에 큰 위안이 될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신영복 교수님의 "강의"라는 책을 추천합니다. 한 번 읽어보세요. 어렵지만 많은 풍상과 인고의 세월을 겪은 경륜이 서려있음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아무쪼록 힘내시고요 화이팅하세요~~~!
picnic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