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9월 03일
다짐
어촌에서 칠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난 나는 집안 형편이 어려워 고교를 졸업하자마자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지금껏 천직처럼 여기며 일하고 있다.
그런데 공무원 생활을 시작하자마자 연이어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론 동생들을 내가 거둬야 했다.
그 때 내게 힘이 되었던 사람이 같은 직장에서 근무하던 동갑내기 집사람이다.
집사람은 셋방살이를 하면서 두 아이를 낳아 키웠고, 없는 살림에 동생들 결혼까지 시켰다.
정말 고생이 말이 아니었는데 아이들이 학교 갈 나이가 되자 이일 저일 가리지 않던 집사람은
생활정보지 돌리는 일을 하겠다고 나섰다.
어느 찌는 듯한 여름날, 집사람에게 점심이라도 사 주려고 집사람이 있을 구역으로 차를 몰았다.
큰 도로 건너편에 있는 집사람의 밀차를 보았지만 차 세울 곳이 마땅치 않아 조금 지나와 차를 세웠다.
잠시 뒤 소매가 긴 옷에 까만 모자를 푹 눌러쓴 집사람이 건물에서 나왔다.
반가움에 차에서 내리려는 순간 갑자기 바람이 휙 불더니 밀차에 있던 생활정보지가 인도와 차도로
이리저리 날아가 버렸다.
집사람은 바람에 날리는 생활정보지를 주우러 허둥지둥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나는 차에 앉아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가슴속 저 아래서 무언가 치밀어 올랐지만 선뜻 나갈 수가 없었다.
그 사이 집사람은 신문을 다 주워서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태연하게 밀차를 밀며 그 자리를 떠났다.
차를 돌려 사무실로 돌아오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집사람은 내가 그 때 그 모습을 보았다는 것을 모른다.
나는 지금도 힘들거나 어려울 때면 그 여름날을 생각한다.
신문을 줍느라 우왕좌왕하던 아내의 모습과 차 안에서 흘린 뜨거운 눈물을...
그리고 다짐한다.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힘든 일은 없다고.
# by | 2009/09/03 16:05 | Think | 트랙백 | 덧글(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