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짐

   어촌에서 칠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난 나는 집안 형편이 어려워 고교를 졸업하자마자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지금껏 천직처럼 여기며 일하고 있다.


   그런데 공무원 생활을 시작하자마자 연이어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론 동생들을 내가 거둬야 했다.


   그 때 내게 힘이 되었던 사람이 같은 직장에서 근무하던 동갑내기 집사람이다.


   집사람은 셋방살이를 하면서 두 아이를 낳아 키웠고, 없는 살림에 동생들 결혼까지 시켰다.


   정말 고생이 말이 아니었는데 아이들이 학교 갈 나이가 되자 이일 저일 가리지 않던 집사람은


   생활정보지 돌리는 일을 하겠다고 나섰다.


   어느 찌는 듯한 여름날, 집사람에게 점심이라도 사 주려고 집사람이 있을 구역으로 차를 몰았다.    


   큰 도로 건너편에 있는 집사람의 밀차를 보았지만 차 세울 곳이 마땅치 않아 조금 지나와 차를 세웠다.


   잠시 뒤 소매가 긴 옷에 까만 모자를 푹 눌러쓴 집사람이 건물에서 나왔다.


   반가움에 차에서 내리려는 순간 갑자기 바람이 휙 불더니 밀차에 있던 생활정보지가 인도와 차도로


   이리저리 날아가 버렸다.


   집사람은 바람에 날리는 생활정보지를 주우러 허둥지둥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나는 차에 앉아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가슴속 저 아래서 무언가 치밀어 올랐지만 선뜻 나갈 수가 없었다.


   그 사이 집사람은 신문을 다 주워서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태연하게 밀차를 밀며 그 자리를 떠났다.


   차를 돌려 사무실로 돌아오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집사람은 내가 그 때 그 모습을 보았다는 것을 모른다.


   나는 지금도 힘들거나 어려울 때면 그 여름날을 생각한다.


   신문을 줍느라 우왕좌왕하던 아내의 모습과 차 안에서 흘린 뜨거운 눈물을...


   그리고 다짐한다.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힘든 일은 없다고.

by xissy | 2009/09/03 16:05 | Think | 트랙백(12967)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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